[토박이말날 첫돌을 맞으며]
그렇게 맵차던 겨울을 밀어내고 어김없이 봄이 와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때 아닌 눈과 꽃샘추위, 소소리바람도 잘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도 봄을 생각하며 견딜 수 있고, 더운 여름도 서늘한 가을을 생각하며 참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토박이말이 사는 걸 보면 이제껏 겨울만 이어지는 듯합니다.
일본이 나라를 빼앗은 뒤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 하게 한 까닭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을 때 가장 먼저 ‘우리말 도로 찾기’를 한 까닭도 함께 말입니다. 그렇게 바르게 채웠던 첫 단추를 다시 풀어 어긋나게 채우고 말았으니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글살이 모습은 비뚤게 채워 입은 옷차림과 닮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스스로 일터 이름, 가게 이름을 영어로 바꿨으며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우리 말글살이를 말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 볼 때 어떨지 많이 궁금합니다.
우리말을 배우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말에는 한국 고유의 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말은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정부, 공공기관,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앞 다투어 우리 토박이말을 외면해 왔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나라 곳곳에 널리 펴져 있는 쌓이고 쌓인 잘못을 없애고 바로잡겠다고 해서 참 반가웠습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니 그 어떤 일보다 먼저 나랏말을 챙길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말글살이에 있는 잘못도 바로잡겠다는 말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나라 일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우리 바람은 아주 멀다는 것만 더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을 아주 새롭게 바꾸어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밤낮없이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날이 얼른 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수(방법)을 찾는 일에 매달리는 걸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교육을 새롭게 하려면 새로운 수 찾기와 더불어 가르치고 배우는 알맹이(내용)을 쉽게 만드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일본 사람이 뒤쳐(번역해) 만든 말을 글자만 한글로 바꿔 쓴 말이 가득한 배움책을 일흔 해가 넘도록 그대로 두고 새로운 수만 찾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우리다움을 찾아 지키는 일에 힘을 쓰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흐름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그 흐름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토박이말의 목숨은 우리가 하기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살려 일으킬 수도 있고 그저 그렇게 시나브로 사라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무지개달 열사흘(4월 13일) 토박이말날 첫돌을 맞아 온 나라사람들께 힘주어 말씀드립니다. 우리말 가운데 가장 우리말다운 참우리말은 누가 뭐라고 해도 토박이말입니다. 그 어떤 말보다 더 많이 더 잘 알고 있어야 한국사람답다 할 것입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분들도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는 토박이말을 살리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는 주시경 선생님 말씀을 잊지 맙시다. 정부와 국회가 함께 하루 빨리 토박이말을 살릴 정책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어 주시기 바랍니다.
왜 토박이말을 살려 일으키고 북돋우어야 하는지 그 까닭을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토박이말을 살려야 할 까닭을 굳이 말로 해야 아느냐며 되묻는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토박이말은 우리의 얼이요 삶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다움을 이어갈 알천인 토박이말이 소담한 배움책으로 토박이말을 어릴 때부터 넉넉하게 배우고 익혀 나날살이에 부려 쓰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의 느낌, 생각, 뜻을 막힘없이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갈 길을 마련하는 데 여러분의 힘과 슬기를 보태주시기를 엎드려 빕니다.
꽃보라 흩날리는 봄날 토박이말바라기 모람 모두의 마음을 담아 올림